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이 지난 5월 6일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제기한 두코바니 원전 건설 계약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은 사실상 오는 10월 체코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에너지전환포럼(이하 포럼)은 이번 판결이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라 체코의 정치 지형, 재정 부담, 유럽연합의 규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가처분 명령은 2013년 체코 테믈린 원전사업 당시와 거의 동일한 전개이며, 당시에도 현재 연립정부가 집권당이었음을 지적했다.
포럼은 피알라 정부는 스스로 취소할 수 없는 부담스러운 계약을 법원의 판결이라는 타인의 칼을 빌려 처리한 차도살인의 전형이라며, 계약 서명일을 느슨하게 잡은 것도 의도적인 여지를 남긴 전략이었다고 밝혔다.
포럼은 폴란드의 퐁트누프 원전 사례도 함께 언급했다. 2022년 한수원이 폴란드 정부와 원전 건설 의향서를 체결했지만, 총선 이후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는 원전 수출이 종종 정치적 목적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되고, 선거 이후 번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번 가처분 명령은 유럽연합의 역외보조금규제(FSR)와 EU 기능조약에 따른 승인 절차를 무시한 채 체코 정부가 무리하게 원전 계약을 밀어붙인 결과라는 점도 강조됐다. EC는 이미 두코바니 사업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건설 호기 수 확대 및 사업자 지분 변경 등도 추가 승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사업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한편,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레드오션이 된 세계 원전 시장에서 한수원의 수출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중동과 유럽에서 수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서부발전은 오만, UAE, 사우디 등지에서 대형 태양광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고, 현대일렉트릭은 미국과 유럽 해상풍력 시장에 진출하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어 석 전문위원은 “한국의 차기 정부는 지난 15년간 정권을 막론하고 지속해온 무리한 원전 수출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세계시장 흐름에 맞춰 재생에너지 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