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각 교차로로 변경된 모습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 소재 “어서각 공원”이 정비되었다. 어서각(御書閣)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지(王旨)를 모셔 놓은 곳이다.

새롭게 단장된 어서각 전경


태조 이성계가 강순용에게 내린 교지를 그 후손들이 간직해 왔는데, 영조가 이를 알고 친필을 써서 어서각을 건립하도록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조가 강순용(康舜龍)에게 교지를 내린 사연이 흥미롭다.

강순용은 고려 말의 사람인데, 문무과에 장원한 후 공민왕 시기에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퇴임 후 가람산 치마대 초야에서 학문에 묻혀 살았다.

이 무렵 무술을 연마하던 이성계가 용연으로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마침 그 곳에 있던 강순용의 여동생에게 물을 부탁하였는데, 그녀는 물을 뜬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

이성계가 사연을 묻자, 장군이 갈증으로 물을 급히 마실까 봐 잎을 띄웠다고 말했다. 감탄한 이성계는 훗날 조선을 건국하면서 이 여인을 성후 현비에 봉하고, 남매간인 강순용에게 교지를 하사하였다.


이러한 전설이 담긴 세종 어서각은 조선 태조, 영조, 정조, 고종이 직접 쓴 글씨를 봉안한 서각으로, 1744년 건립되고 세종시 향토유산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어서각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남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문화적, 건축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종시의회 상병헌 前의장(아름동)은 작년 12월 의회5분 발언을 통해 “세종시는 2014년 어서각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해 왔으나, 최근 관리 실태를 보면 그 가치에 걸맞은 보존과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어서각 측면 벽에 금이 가 있는 모습과 전툇간 마루에 방문객의 신발 자국과 흙먼지가 쌓여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유지 보수와 환경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역사공원 내 시설물도 심각한 노후화 상태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의자는 파손으로 사용이 어렵고 쉼터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10년 은행나무 주변도 비가 올 때마다 토사가 쓸려 내려와 안전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에, 최근 세종시는 어서각이 문화재로서의 품격과 기능을 다 하도록 관련 예산을 마련하여 ‘어서각 공원’의 환경을 정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인근 교차로도 “어서각 교차로”로 명명되었다. 상 前의장은 어서각이 문화재로서의 상징성과 가치가 큰 만큼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어서각 교차로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고 시는 이를 수용했다.